오랜만의 스리랑카 이야기 포스팅이다. 그동안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 정신이 없는 바람에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스리랑카에서의 생활은 2년 정도 예상했는데, 약 8개월 만에 스리랑카를 떠나게 되었다. 1년도 채우지 못한 8개월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마치 8년.. 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길게 느껴졌던 쉽지 않은 해외 살이었음에 분명하다.
스리랑카를 떠난 지금, 스리랑카에서의 생활을 기록하여 남기려던 나의 계획은 실천되지 못해 조금 아쉽지만 내 머릿속에, 그리고 사진으로 남겨두었던 스리랑카의 생활을 기록한다.
오늘 포스팅은 스리랑카 시골 마을에서 장 보기이다. 시골이라고 하기엔 나름 큰 지역이지만 수도 콜롬보나 다른 도시에 비하면 시골이라 할 수 있기에 나는 시골이라 부르겠다.
어느 곳에서 살던지 사람은 먹는 것이 중요하기에 어디서 먹을 것을 얻을 것인지 제일 먼저 찾아보는 것 같다. 우리도 이곳에 오자마자 장을 어디서 봐야 할지 찾아보고 그 근처에 집을 얻기를 바랐다. 우리는 스리랑카에서 자동차를 구입할 계획이 없었고, 자동차가 있다 한들 스리랑카의 지금 경제 상황으로 기름을 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걸어서 갈 수 있는 마트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스리랑카에는 카길이라는 마트를 많이 볼 수 있다. 콜롬보에서 지낼 때에도 카길을 주로 이용했다. 한국의 이마트나 홈플러스처럼 대형마트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식료품, 야채, 과일, 공산품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도 가까이 2개 정도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가 점찍어둔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카길이 있어서 집을 구하는데 플러스 점수가 되었다. 처음 이사한 후에는 카길에서만 장을 보았다. 야채는 주로 감자, 양파, 마늘, 파프리카, 양배추를 샀다. 가끔 무와 배추, 쪽파도 들어와서 무생채를 만들고 배춧국을 끓여먹었다. 대파가 없기 때문에 쪽파로 대신했고, 요리에 열정이 넘쳤을 때는 처음으로 파김치도 담가 먹었다. 감자는 참 고마운 야채이다. 감자가 없었다면 뭘 해 먹었을까 싶을 정도로 여러 요리에 사용할 수 있어 좋고, 맛도 좋아 항상 구비해두었던 것 같다.
과일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처음에 도착해서 집을 구하기 전에 호텔 생활을 했을 때는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사과를 사서 먹었는데 나중에 계산해 보니 다른 과일에 비해 비싼 편이었다. 집으로 들어간 이후에는 파파야나 파인애플, 망고, 바나나 등 현지에서 나는 과일을 주로 사 먹었고, 카길 마트 말고 과일 가게를 찾아서 그 곳에서 과일은 주로 사 먹었다.
그리고 카길에서 주로 샀던 식료품은 우유, 시리얼, 요거트, 식빵, 잼, 파스타면, 과자 등이다. 아침은 주로 시리얼에 우유를 먹거나 요거트에 꿀을 넣어 먹었고, 점심에는 식빵을 구워 잼이나 버터를 발라 먹거나 계란 프라이를 넣어 먹었다. 콜롬보에 있는 맛있는 바게트 빵집에서 사 온 두개의 잼으로 몇 개월을 먹다가 다 먹고 난 후에는 모험이라도 하는 듯 카길에서 잼을 구입했는데 먹을만했다. 그리고 저녁으로는 한국에서 가져간 조미료로 한식을 해먹거나 파스타를 주로 해서 먹었다.
경제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카길에서 파는 물건들도 가격이 점점 올랐다. 시리얼 같은 경우는 거의 두 배가 올랐지만 우리 주식이었기 때문에 살 수밖에 없었다. 식료품 외에도 휴지, 세제 등의 가격도 많이 오르는 것을 보았다. 재고가 없는 경우도 있어서 우리는 물건이 들어올 때마다 사두곤 했다.
생활이 좀 적응할 때쯤 우리는 활동 반경을 점점 넓히고, 주변 현지 분들에게 정보를 얻어 카길을 벗어나 장을 보기 시작했다. 집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가면 야채가게, 과일가게가 있어 그곳에서도 사서 먹고 가게 주인과 정도 나누었다. 남편 회사 사람들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던 우리는 친구를 사귀는 듯 가게 주인들과도 친해지고 정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지역에서 외국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외국인인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스리랑카 사람들이 가끔 기억이 난다. 스리랑카에서 살 때는 너무 힘들어서 빨리 떠나고 싶었는데, 막상 떠나는 날 여러 감정이 교차하면서 눈물이 많이 났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사람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들 잘 지내기를...
우리는 현지 시장을 알게 되어 주말엔 버스를 타고 시장을 갔다. 버스를 타는 것이 나에겐 모험 같은 일이었다.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더 두려웠던 것 같다. 사실 생각해 보면 코로나 이전에는 다 버스 타고 여행하고 했던 것 같은데.. 현지인들이 타는 버스를 타는 것을 왜 그렇게 겁냈을까 싶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까지 20분 정도 걸어서 버스를 타고 또 한 15분 정도 걸리는 시장에 갔다. 시장에 간 이유는 해산물과 고기를 사기 위해서였다. 카길에서는 구하기 어려웠고, 있다고 해도 신선한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 시장은 무슬림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를 살 수 있었고, 여러 생선과 새우, 오징어도 살 수 있었다.
한국의 정육점처럼 고기를 파는 곳이 두세 군데 있는데, 사람들이 꽤 많았다. 우리는 미리 얻은 정보로 아침 일찍 간다고 갔는데도 처음 갔을 때는 우리가 사려고 한 안심은 이미 다 팔리고 난 후였다. 그래서 첫날에는 새우만 사서 갔고, 나중에는 조금 더 일찍 가서 소고기도 사고 닭고기도 샀다. 현지 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해가 뜨면서부터 더워지는 날씨에 시장에 갔다 온 날은 땀을 엄청 흘려 기진맥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는 항상 만원이고 문도 연채로 쌩쌩 달리는 버스에 항상 긴장상태였던 것 같다. 시장에는 카길 정도의 마트도 있었는데 카길에 팔지 않는 수입 제품들도 많이 있어서 우리는 신나하면서 누텔라 초코 잼, 피스타치오, 과자, 초콜릿 등 사왔다. 우리가 사는 지역이 해안가였기 때문에 해산물도 구할 수 있었는데, 생선은 이름 모르는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아서 사지 않았고 새우만 주로 샀다. 새우만 있어도 파스타, 볶음밥을 더 맛있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손질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 밖에도 주변 사람들을 통해 집 주변 가게들도 알게 되어서 카길에서 팔지 않는 계란도 사서 먹고,, 집을 구하고 1달 정도 지나서 계란 파는 곳을 알게 되었다. 가끔 타운에도 나가서 여러 가게들도 구경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사면서 느리지만 조금씩 스리랑카 생활에 적응하면서 지냈다.
사람은 다 적응하면서 사는 것 같다. 다시 가서 살래라고 물어보면 싫다고 하겠지만, 그곳에서의 생활도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콜롬보에 살았다면 삶은 더 풍족하고 여유 있었겠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니 그 경험 또한 귀중하고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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